평범한 이미지

정희영(독립 큐레이터)

사진은 더 이상 사진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늘날에는 자신이 원하는 장면을 사각 프레임 안에 공들여 찍으면서, 감각을 넘어선 환상을 포착하려는 인플루언서가 있다. 게다가 별처럼 반짝이는 스타 곁에는 언제나 “과거로부터 혹은 미래로부터 왔든, 지루하든 짜릿하든 간에, 새로운 이미지에 대한 기대로 손과 이미지 사이를 클릭과 터치로 느슨하게 연결”하는 자, 대중이 있기 마련이다. 문형조 작가가 작업노트에서 묘사했듯이, 웹 이미지는 느슨하면서도 팽팽하게 순간과 영원을 넘나들며 우리의 감각을 연결한다. 사진이 개인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편집하여 환상을 재현하기 위한 욕망의 시발점이라면, (우연찮게 웹 공간을 배회하게 된) 이미지는 종종 혹자를 구원하거나 타락시키는 예술의 종착점이다. 그러니 인스타그램, 유튜브 같은 플랫폼에 업로드한 사진은 기록이기도 하지만 기록을 넘어선 것이기도 하다.

전문적인 카메라와 통상적인 스마트폰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질수록, 웹 공간은 사진의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전장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니 사진이 반복적으로 생산·소비되는 현장을 사진가로서 인식하는 일은 문형조 작업에 있어 중요한 시작점이다. 사진가 ‘만큼’이나 혹은 ‘보다 더’ 깊은 존재를 받아들이고 나서야, 비로소 작가는 껍데기만남은 사진 무덤에서 ‘오늘날 사진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진실한 자리에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그는 장소에 방문하여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대신, 가장 혼란스러운 자리에서 부유하고 있는 사진/이미지를 바라본다. 누리꾼들에 의해 웹에서 끊임없이 상단을 점유하며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는 이미지, 그리고 스크롤을 내려야만 만날 수 있는 과거에 갇힌 이미지에서 시간성은 길을 잃었다. 생존, 소멸 그리고 부활하기까지 예상치 못한 시간을 맞이한 이미지들을 마주할 때마다, 작가는 그러한 순간을 작업에서 구출하거나 포획한다. 이는 뭉개지고바스라진 진심일지라도 일반인의 손끝이 만들어간 웹-사진계를 포착하려는 시도이지만, 시간이 흘러 작가의 작업 속에 재위치한 사진 속엔 실체와 진실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다. 유령 회사처럼.

문형조에게 있어 피사체는인물이 아니라 모니터 화면이다. 카메라가 과거를 포착하듯이 그는 컴퓨터 화면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불현듯 멈추어 본다. 웹에서 취사선택한 사진을 다채롭게 변형시켜 납작하고 평평한 웹 이미지를 생산하데, 사진이라는 프레임 속에 창을 띄우고 사진을 여러 번 덧붙이는 식이다. 때론이미지 위에 마우스로 드로잉하여 신체적 감각을 가미하거나, 이미지 자체를 왜곡하여 변형하기도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작가는 카펫, 의자, 핸드폰에 결과물을 출력하여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접하는물체 위에 시간을 정지시킨다. 단 한 순간도 물질인 적 없었던 웹-이미지는 사물이되어 우리의 일상에 끼어든다. 세탁하는 순간 이미지는사라지기에 ‘사물화된 사진’은 그 모든 사람의 흔적과 시간의 흔적을 쌓아가야 한다. 이미지가 회전하고 소비되는 구조 속에서 사진은 시간도 실재도 더 이상 보증하지 못한다. 작가는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전시장 속으로 우리의 살갗이 맞닿는 사물 위로 유령회사에 갇힌 현대사진을, 더이상 신뢰와 믿음이 부재한 이미지를 조심스레 초대한다.

문형조는범람하는 사진을 바라보며 감추어진 현실을 직면하는 동시에, 무엇이 예술인지 묻기 위해 지극히 일상적인자리에서 오래토록 머문다. 그의 작업적 가치는 개개인의 컴퓨터 화면에 부유하고 있는 다양한 창들을 사진프레임 속에 포착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술이품고 있는 ‘평범함’에 몰입하면서부터 그 빛을 발한다. 문형조가 붙드는 사진은 우리가 아는 삶이고, 그가 다가간 평범함에는낯익은 예술이 안겨주는 위안이 있다. 사진이 너무도많아서 우리는 사진을 모른다. 《Shell Corporation》전시장에는 껍데기만 남은 사진, 건실하고 단단한 내면의 사진, 아직태어나지 않은 사진 모두가 있다. 그리고 찬찬히 바라보면 카펫, 의자, 핸드폰 위에 출력된 이미지에선 작은 숨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니, 그래요. 이 모든 것들을 바라보기로 해요. 늘 해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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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gjo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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